은혜의 선물, 삶의 3종 세트

prologue 2025년 11월호 은혜의 선물, 삶의 3종 세트 글 서진아

살아지다.

살다 보면, 의지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모든 걸 놓고 싶은 그때에도 이유 없이 숨이 이어지고, 어두운 터널 같은 밤을 지나 아침이 열립니다. 그것은 단지 ‘살아 있음’이 아니라 ‘살아짐’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된 것도, 그분 앞에 나아갈 믿음을 얻게 된 것도 오롯이 은혜로 인함입니다. 내 발로 선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세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우리는 살아집니다.

 

살아가다.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날을 이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바디매오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메시아를 알아보고 외쳤던 것처럼,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꾸중과 책망이 따르더라도, 그 믿음 하나로 오늘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신앙의 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고 그분을 향해 걷는 일입니다.

 

살아내다.

때로는 병의 세월처럼 길고, 고통의 시간처럼 지독한 날이 있습니다. 혈루증 여인처럼 손끝의 용기로 예수의 옷자락을 붙드는 순간, 살아낸다는 말의 의미가 새겨집니다. 그저 버티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웅덩이 속에서도 하나님이 귀 기울여 주시고, 수렁 속에서도 우리를 끌어올리시는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새 노래를 부릅니다. 살아낸다는 것은 절망을 지나 다시 일어서는 노래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지고, 살아가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3종 세트’, 은혜의 선물입니다. 올해 남은 걸음이 고단하더라도, 이 믿음의 리듬 속에서 오늘을 담대히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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